Angel Voice - Notes

PC 게임/Type - Moon 2008. 4. 28. 04:49 Posted by 헬리르

ANGEL VOICE -천사의 목소리-

; Angels Voice

; 엔젤 보이스

; 엔젤스 보이스

            -월희 독본 중 Notes 에 수록.
                [혹은 Notes 가 제목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건 아닐듯 =-=;;]
                나스씨가 동인시절에 쓴 글로, 마법사의 밤과 같이
                월희,페이트로 이어지는 나스월드의 한 주축을 이루는 단편(?)소설.
===============================퍼가시는건 상관 없으나, 출처를 밝혀주시길.======================
                           분명 출처가..  http://cafe.naver.com/fate9.cafe 게맣 님 글 입니다.
                                단지 이분이 번역하신건지 아닌지의 여부는 모릅니다만... by. 헬리르.

 

0/ God Gun

 

 박쥐를 닮은 기체는 대류권을 넘어 상승해 가지만

   회색의 운해(雲海)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다.

 

  강철로 된 날개는 납빛의 하늘을 날아간다.

  인류 종에 있어서 공통의 적을 배제하려는 사명을 띄고서.

 

  전투의 말엽, 작전에 참가한 기체는 한 기를 남기고 전멸했다.

  고물 취급했던 자동조정장치가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조종사가 사람이 아닌 이 기체만이 적의 생체파동에 유인되지 않은 것이다.

 

  단지 혼자서 계속 날고 있다.

  기체 안에 울리는 생명의 고동은 역시 자신의 것뿐이었다.

 

  해치를 열고, 총을 들어올린다.

  세차게 흘러 들어온 바깥 공기는 섬뜩하게 폐를 찌른다.

  기체의 기온은 마이너스에 달해, 방한구는 최소한의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생명활동을 간신히 유지하는 레벨.

 

  원래부터 비행종(飛行種)을 수송할 뿐인 이 기체에는 저격을 위한 장비 따윈 달려있지 않다.

  싸우기 위해선 생명을 깍지 않을 수 없다.

 

  혹한과 폭풍.

  등 뒤에는 뇌수를 귀와 코로부터 쏟아낸 동료들의 시체.

  언제까지 계속 날 수 있을지 예상도 되지 않는 낡은 비행기.

  상황은 염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가차없이 최악이었다.

 

  저격용으로 바꾼 검은 총신을 들어올린 채, 단지 기다렸다.

  적의 모습이 스코프 너머에 비치는 순간.

  트리거를 당기고 편안해질 순간을.

 

  기내의 시계는 7일 분의 시간을 거듭했다.

  아직 7일 밖에 서 있지 않았다.

  마비된 머리는 앞으로 1개월이든 1년이든, 이 자세로 계속 기다릴 거란 느낌이 들었다.

  육체는 줄곧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의식도,

  언어도,

  자신도,

  잃어버렸을 때

  비로소 모든 것을 되찾았다.

  총의 조준이 '적'을 잡았다.

  망설임 없이 트리거를 당긴다.

 

  한계를 돌파해버린 뇌수가 불타며 끊어진다.

  잠으로 떨어지는 일순의 간극.

  의식이 하얗게 채워지기 전의 얼마 안 되는 시간.

  확실하게 자신이 지워지기 전, 적의 모습을 인식했다.

  대체…….

  이 아름다운 건…….

 

---구름이 갈라진 사이로 천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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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강철의 대지(鋼の大地) [OVER COUNT WORLD]

  임종해버린 별. 죽음에 이른 행성. 생물이 살 수 없는 세계.

  현재의 세계를 가르치는 명칭. 정식 명칭이 아닌 황폐해진 대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는 속칭. 강철의 대지라는 단어가 나타내는 대로 현재 대륙의 대부분은 산산조각난 황무지에, 회색과 뿌옇게 흐린 구름으로 덮여있다. 먹을 것을 키울 수 없고, 대기는 이미 생물에게 적합하지 않게 되어있다. 인간종 식으로 말하자면 철저한 세기말. 하지만 모체인 별이 죽었어도 인간종은 그 발달된 문명기술로 살아 남았다. 일찍이 사람들이 예상했던 별의 마지막조차 인간종을 멸망시키지는 못했다.

 

 

l 아려백종(亞麗百種) [A-Ray]

  별의 자원을 전소시킨 인간이 낳은 차세대 영장류.

  일찍이 별에 존재하고 있던 각종생물을 모티브로 한 것, 그 계통수(系統樹)는 여러 가지로 크게 분류해 백종에 달한다. 1부터 10위까지의 위치에 있는 아려는 단일종으로, 군체가 아니다. 인간의 유전자도 포함하기 때문에, 인간과 닮은 형태의 아려도 존재하지만, 역시 대부분은 각종 생명종과 영장류가 진화 융합한 것이다.

 

 

l 인간종(人間種) [Liner]

  강철의 대지에 사는 인류. 인간종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 세계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진화한 것.

  정확히는 그들도 아려에 포함된다. 현재 환경에 대응해 생활은 가능하지만,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상회하는 능력은 없다. 이미 문명사회를 재생하며 국가를 형성하고 있다. 아려백종과는 불가침상태.

 

 

l 대전(大戰) [Babel's Tale]

  별의 임종 후, 살아남은 인류와 아려백종 사이에 일어난 전쟁.

  생존을 건 인류와, 세계의 패권을 건 아려와의 싸움. 군체가 아니었던 아려를 통일한 여섯 자매 앞에 인간은 패배직전까지 몰렸었다. 대전 말기 인류 측은 인간종과 기사를 탄생시켰고 싸움은 죽음에 이른 별을 더욱더 사멸시키는 대전으로 발전한다. 대전의 승자는 없다. 양 세력의 싸움은 돌연 날아든 제 3자의 손에 의해 양쪽 다 멸망직전까지 가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l 기사(騎士) [Etheric Liner]

  인간종 중에서도 격변한 환경을 보다 강하게 받아들인 생명종. 마검이라 불리는 특수병기를 사용한다.

  구시대 병기의 조력 없이 아려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공성종(攻性種). 현재 78명이 등록되어 있다.

 

 

l 마검(魔劍) [Knight Arms]

  기사가 가진 무기의 총칭

  이 세계에 태어난 인간종은 전부 '진'의 영향을 받는다. 태어날 때 진을 체내에 많이 함유하고 탄생한 아이는 그것을 자신의 골자(骨子)로 키워, 성인이 될 즈음에 외계로 형상을 갖추어 내보낸다. 지금도 미해석된 '진'으로 형성된 이 병기는 갖가지 현상을 유발하고, 그것은 충분히 병기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마검을 형성시킬 수 있는 인간은 극히 적고, 그 중에서도 실전에 쓸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마검을 가진 인간종을 기사라 부른다. 한 사람의 기사에 따른 마검은 한 자루뿐이다.

 

 

l 진 [grain "Ether"]

  우주진(宇宙塵). 행성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별에서 피어 오르는 갖가지 유해물-계측 불가능한 입자의 총칭. 인체에 유해하지만, 동시에 높은 퍼텐셜을 가지고 몸에 특이한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에텔(이썰)이라고도 불린다. 아려백종, 인간종, 기사들은 이 진에서 태어난 신종에 불과하다. 대기 중에 분산된 진의 에너지 변환율은 엄청나서, 결과적으로 일찍이 이 행성 상에선 있을 수 없었던 전투이론이 생겨났다. 진을 체내로 모으는 아려, 진을 결정화 시킨 마검의 전투는 구시대의 병기를 전부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다.

 


1/ Original Sin

 

  일을 끝내고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와 보니, 방에 기타를 든 천사가 있었다.

    천사의 악몽이 계속되더니만, ...아무래도, 난 드디어 맛이 가버린 것 같다. 물결처럼 굽이치는 금발과 새하얀 원피스. 소녀에 가까운 어린 모습이 남아있는 얼굴에, 머리 위에 떠있는 빛의 고리라니. 이게 천사가 아니라고 한다면, 대체 무얼 천사라고 할까.

   「안녕하세요.」,라고 어색하게 웃으며 천사는 인사했다.

    눈꺼풀을 비비며 방으로 올라왔다. 천사는 방의 한가운데 선 채, 어째선지 기타를 품에 안고 이쪽을 흘낏거리며 쳐다본다.

「뭐야, 넌?」

「예, 천사입니다.」

  방긋 웃으며 천사가 말했다.

「천사란 건 보면 알아. 왜 내 방에 있는지 묻는 거다. 몸 팔러 온 거면 방을 잘못 찾았어. 공교롭게도 천사를 살 수 있을 정도로 벌지 못하니까.」

「저를 팔러 온 게 아니에요. 그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당신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라고 할까요?」

「그 정도면 충분했으니까, 이제 나가 줘.」

「그럴 수는 없어요. 게다가 저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

  가슴을 펴고 말하기에, 방의 청소를 시켜봤다. 결과는 비참을 넘어 처참했다.

「...저, 요리라면 완벽하게...」

  샤샥하고, 검지를 세우며 천사는 말했다.

「이제 됐어. 공장의 먹거리는 몸에 맞지 않아. 영양이 넘쳐서 혈관이 터져버려. 말하는 뜻을 알겠어?」

  끄덕거리며 천사는 수긍했다. 내가 아려백종(亞麗百種)에 포함되지 않는 인간종[Last-seed]이라는 걸 알고 있는 듯 하다.

「그럼, 달리 뭘 할 수 있지?」

「기타를 쳐요!」

  활기 넘치게 말한 천사는 손에 든 기타의 현을 탔다.

  파란 기타는 전기로 소리를 울리는 종류의 것으로 천사에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다.

  게다가 연주는 엉망진창.

「됐으니까, 나가.」

  천사의 손을 끌어다가, 창 밖으로 걷어차 버렸다.

  며칠이 지나고, 병원에 갔다. 뇌에 이상은 없습니다. 라고 물고기 얼굴을 한 의사가 대답했다.

   매일, 일을 마치고 돌아와 천사를 내쫓는 것은 체력소모가 크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천사의 근성에 지고 말았다.

「하늘, 어두워.」, 라고 천사는 창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읊조린다. 그런 상식조차 모르는 천사는 역시 아려백종에 속한 인공 천사가 아닌 듯 하다.

「있잖아, 넌 어디서 온 거야? 단층(斷層) 이쪽에 사는 아려가 아니지?」

「전 아려같은 게 아니에요.」

「자, 그럼 뭐지?」

「저는 이 거리에 사는 사람들의 환상으로부터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아름답죠. 모든 분의 마음이 더럽혀지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기쁜 듯이 천사는 빙그르르 돌았다.

  스커트의 옷자락이 드레스처럼 팔랑거렸다.

  그 모습은 환상이라고 말한다면 확실히 환상에 가까웠다.

  천사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이 강철의 대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금빛 머리칼은 너무 눈부셔 오히려 독으로 보인다.

  그럼 이건 - 역시 나에게만 보이는 환상인 걸까?

「그 모든 이의 환상이 어째서 내가 있는 곳에 나타난 거지?」

「당신이 나를 쏴 죽인 사람이기 때문이잖아요!」

  죽였다. 라는 사실보다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일에 천사는 화를 냈다.

  복수를 위해서인가 라고 묻자, 복수가 뭐죠 라는 말을 돌려 받았다.

  천사는 그래도 바보가 아닌지, 천천히 여러 가지 일들을 배워나갔다. 청소의 의미도 지금은 확실히 이해하고 있는 듯 했다. 예외는 기타에 관한 것 만일까?

「조금도 기타가 늘지 않아요. 이미지대로 치고 있는데, 원곡과는 소리가 틀려요.」

  과연, 치고 싶은 곡이 있었던 건가? 하지만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당연하지. 그 기타는 튜닝이 돼있지 않아.」

  그렇다, 처음부터 잘못 되어있었다.

  튜~닝이 뭐죠? 라고 천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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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인간(人間) [Last-seed]

  품종개량을 받지 않은 인간종, 혹은 그 마지막 후예.

  이미 이 행성에서는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멸종직전이라고 한다. 인간이 외부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약물이나 기계에 의한 서포트가 필수. 공기조차 그대로 흡입하면 죽어버리고, 공장에서 만들어진 음식물은 몸에서 수용할 수 없어서-역으로 독이 된다. 희소종이지만, 희소가치는 없다.

 

l "하늘, 어두워." [cloud sky]

  구름에 뒤덮인 하늘. 몇 십 중으로 겹친 구름 층은 대전 이후 하늘이라는 것을 가리고 있다.

  하늘이 회색인 게 아니라,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에 가깝다.

 

l 천사(天使) [No.20 Guardian Angel]

  아려백종에 포함된 인공의 천사.

  백종 중의 20위지만, 물질을 파괴한다는 면에 있어서는 10위 내의 종에 육박한다. 단일종의 아려를 수호하는 군체. 구세계에 있었던 최대종교의 사도를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두 장의 날개를 가진 인간종. 세계붕괴 후 대기중의 산란된 중입자를 체내로 흡수해, 그것을 동력원으로 활동하는 공성종(攻性種).

 

 

2/ Public Garden

 

  등에는 새의 날개가 있고, 몸의 구조는 사람형의 여성체. 거기에다 조형미까지 갖추어지면 그 생물은 천사라고 불린다.

  내 일은 그 천사를 하루에 스무 마리 정도 쏴 죽이는 것이다. 그래서 천사라고 불리는 모든 것들에게 원망을 사는 건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일년 전 내가 이주해온 이 에어리어는 강철의 대지에선 특이한 거리였다. 죽음에 이른 별의 표토에 더 이상 식물은 자라지 않는다. 그런데도 거리의 도처에는 쥐색 나무들이 자라고, 구릉에는 회갈색의 초원마저 있었다. 거리 중심에 있는 언덕에는 큰 나무가 뻗어나 있어, 거리의 하늘을 덮고 있다. 이 나무는 운해까지 닿아있고, 그 거대함으로 인해 세계수라고 불린다.

 

  나는 직업으로 천사 사냥을 택했다.

  이 거리에는 매일 같이 하늘에서 천사가 떨어져 사람들을 덮친다. 그것들은 지성이 없는 단지 외견만이 천사를 닮은 생물이다. 사람을 습격한다고는 해도 들개정도의 위험이라 그다지 피해는 없다.

  단지 그냥 놔두면 거리는 천사에 파묻혀 버릴 지경이라 관리 위원회는 어쩔 수 없이 천사 처리계를 마련했다. 천사라는 건 떨어지는 장소가 일정하고, 교외의 숲에 특히 잘 떨어진다.

 

  총의 방아쇠를 당기고, 어깨로 발사의 반동을 받아넘긴다.

  알몸으로 내려온 천사는 이마를 뚫려 지면으로 자유 낙하했다.

  숲의 지면에는 흩날리는 낙엽과 셀 수 없을 정도의 천사 시체가 포개져 있다.

  걷기 힘든 울퉁불퉁한 지면을 횡단해, 거리를 감싼 성벽 안으로 돌아오는데 다른 부서를 담당하고 있는 수인(獸人)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여, 요즘 어때, 일은 잘 돼가?」

「그 쪽이랑 다를 바 없어. 한 마리 당 동화 3개, 탄값을 빼고 나면 동화 1개도 안 남아.」

「총을 쓰니까 그렇지. 남자라면 몸으로 승부해. 몸으로.」

「미안하지만, 운이 없게도 그렇게 튼튼하지가 못해서, 밖에서 숨쉬는 것 만해도 약을 먹지 않으면 오염되어버리는 몸이야. 살아가는 것만으로 힘겨울 정도지.」

「그런가? 불편한걸 인간이란 거.」

「그래, 불편하지. 인간이란 건.」

  그렇다, 이 세계에서 인간은 두말 할 나위 없이 불편하다. 그래서 옛날 인간은 여러 가지를 고안해 도구를 만들었던 걸 테고, 그 결과 태어난 게 아려이며, 그 결말로 준비된 것이 대전(大戰)이었다.

  그렇게 순수한 인간은 도태되었다.

  집에 천사라는 식객이 생겨서 일의 담당구역을 늘리기로 했다. 저 천사는 신나게 먹어댄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소재는 무료 지급이라고 하지만, 거기에도 한도가 있다. 어쩔 수 없이 하루 표준량을 스물에서 서른 마리로 늘렸다.

  천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천사를 보다 많이 죽인다라는 건 대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최근 꽤 열심히 일하잖아, 너.」

「스트레스를 발산할 뿐이야. 다행히도 여기의 표적은 모두 스트레스의 원흉과 닮았으니까 이런 무의미한 일도 결국 몸에 익게 거지.」

  자포자기해서 푸념을 늘어놓자. 수인은 이해불능이라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일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최근 기사단 녀석들이 숲을 시찰한다는 이야기가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마검사가 말야, 너에 대한 걸 조사하는 듯 해.」

「뭐야, 그건? 아리스토텔레스라도 온다는 거야, 여기로?」

「글쎄, 그런 일보다 이번 달도 급료가 내려간다는 소문이야. 그 쪽이 보다 리얼한 사활문제지.」

「그렇군. 이제 슬슬 재정국도 우리들을 말려 죽이려고 하는 건가 봐.」

「난 나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하는 이 옆 사람은 오십 명 이상의 인간종을 무차별 살해한 죄인이기도 하다.

  수인은 한숨을 내쉬고는 물끄러미 숲에 흩어진 천사의 유해들을 바라보았다.

「있잖아. 저거 먹어도 될까?」

  좋지 못한 명안을 불쑥 생각난 듯 말했다.

「그만 둬, 벌 받을 꺼야. 분명.」

  어깨를 움츠리며, 당연한 듯 대답을 했다.

 

 


3/ Roman

 

    퇴근하는 길에 천사에게 붙잡혔다. 집에 있는 천사가 아니고, 버젓이 아려 계통수(系統樹) 내에 속한 천사다.

「최근 만나기 힘들어, 너. 나 같은 미인의 잔을 거절하다니 불능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 돼.」

  강제로 술집에 끌고 가, 알코올을 들이대며 그녀는 말했다.

  확실히 요 반년 가까이 그녀와 이야기한 기억이 없다. 시시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던 중, 다른 손님이 야유를 날렸다. 천사에게 그런 인간종보다 아려 상대를 하는 편이 어울린다고 농을 걸어왔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수작을 건 상대를 노려보는 것만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

「미안해, 기분 나쁘지?」

「그거야 좋지는 않지만, 저 녀석이 하는 말도 당연하긴 해. 어째서 나 같은 걸 상대하는 거지, 너는? 공성종(功性種)의 아려는 보다 강한 종을 낳기 위해 연애를 하잖아, 나하고는 강한 자손을 못 만들어.」

「상관없잖아, 예외가 하나 있어도. 게다가 우리들은 외견상의 아름다움도 중요시해. 천사종에 가까운 아려는 적은데다가, 당신은 내 취향이니까. 별 문제 없어.」

  글라스에 들어간 보랏빛 휘즈를 입으로 가져가며 그녀는 말했다. 그 모습은 천사 그 자체였다. 그녀의 날개는 하늘을 날기 위한 게 아닌, 주위의 중입자를 모으기 위한 받침접시-혹은 집진기 같은 것이다. 천사종은 날개가 없어도 비행할 수 있다. 일찍이 여섯 자매라고 불리던 아려의 수호자 역할을 했던 천사종은 전투능력에 있어서는 마검을 든 기사와 동격이라고 알려졌다.

즉, 단신으로 핵미사일 정도의 파괴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술이 들어가 정신이 몽롱해질 무렵, 그녀는 이상한 걸 물어왔다.

「있잖아, 어째서 당신은 총을 쓰지?」

「흠, 인간은 아려처럼 '진'을 이용하지 못하잖아. 완력도 한계가 있으니, 병기에 의지하는 건 당연하지. 개인이 다룰 수 있는 화기라면 총 이외에 뭐가 있겠어.」

「흐응~ 그건 이를테면 인간은 싸움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야기네. 그런데 어째서 당신은 싸우는 거지?」

「그런가……, 어렸을 적에 가족이 살해당했었고. 복수하기 위해 총을 파내서 사격솜씨를 키우게 됐지.」

「뭐야, 흔한 이야기네.」

  그래, 흔한 이야기지, 라며 웃으려고 했지만, 잘 웃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억지 웃음이 성공한 일은 한 번도 없다.

「그렇지만, 가족이란 게  동족인 거지? 이쪽에 당신 이외의 인간종이 있다는 얘긴 들은 적이 없는데.」

「말하지 않았었나? 난 원래 웨스트랜드 출신이야. 대단층(大斷層) 저편이지.」

「웨스트랜드라면, 그 칠흑의 거인에게 사라진 대륙?」

  놀랐는지 그녀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웨스트랜드가 완전히 불타 사라졌을 때, 나는 아마 열 두세 살 정도의 꼬마에 불과했다.

  벌써 지금으로부터 7년 가까이 된 이야기다.

「그런데 말야, 당신, 아직도 그 일 하고 있어?」

「하고 있지. 나 같은 반별한테 다른 일은 없으니까. 희소종으로 보호 받는 것도 싫고... 뭐야, 너 또 트집잡으려는 거야? 그것들과 넌 다르잖아. 신경 쓰지마, 바보같이」

「신경 쓰여. 다른 녀석이 하는 건 괜찮지만, 하필이면 당신이 매일 천사를 죽인다니, 굉장히 열 받는다니까. 응, 다른 일을 소개 시켜 줄게. 나랑 함께 라면 지금처럼 지내지 않아도 돼.」

  천사가 어째서 저렇게 까지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됐어, 지금 이대로가 좋아.」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지금 그녀는 이쪽의 밑바닥까지 꿰뚫을 듯 차가운 눈을 하고 있다.

「그렇구나, 당신은 생각하는 걸 멈춘 거네, 그래서 괴롭지 않은 거야. 하지만 그 대신 즐겁지도 않지. 여태껏 추억에 잠긴 일도 없을 테고. 당신이 사용하는 기계 같은 나날이야. 그러니까 핑계라는 알기 쉬운 의미로 무장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거지.」

  표연한 얼굴로 천사는 말했다. 그렇지만, 기계의 어디가 나쁜 거지? 감정만 있으면 훌륭한 생물이라고 하는 것, 그거야말로 환상이다.

「흥, 오늘 꽤나 엉기는걸.」

「그야 시비를 거는 거니까. 야속해, 너무」

「술주정하는 천사라니 이미지 망가져.」

「뭐야, 이래봬도 고향에선 좋다는 녀석들이 줄을 선단 말야.」

  그래 그래, 라고 대답하며 나도 글라스를 들었다. 자제할 생각이었지만, 결국 그녀보다 먼저 취해 뻗어버렸다.

  천사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있잖아, 당신은 왜 싸우는 거야?」

  그건 죽고 싶지 않으니까다.

「그럼, 어째서 죽고 싶지 않아?」

  틀림없이, 살고 싶으니까다.

「어째서, 당신은 살고 싶은 거지?」

  그건 간단해.

  지금까지 좋은 일 따윈 한 번도 없었으니까 다.

「그래? 이유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니 미숙한 생물인 거네. 당신은…….」

  그렇게 그녀는 먼저 자리를 일어났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인간이 본능대로 살았기에, 세계는 한 번 멸망해버렸어. 비관적인 이유로 무장하는 건 남겨진 인간에게 내려진 유일한 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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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아리스토텔레스 [Ultimate ONE]

  대전 말기에 나타난 여덟 개의 생명체. 정체불명의 존재.

  각각의 형태는 확연히 다르고, 그 생태도 접점이 없다. 명칭의 유래 또한 불명. 인류와 아려를 적대시해, 무차별로 공격을 반복한다. 이것에 의해 인류는 그 기반을 완전히 파괴 당하고, 아려백종도 그 수가 급감했다. 대전 종료 후, 하늘을 막은 운해에 의해 활동은 정체되었지만 현재도 무차별로 행성 상의 생명종을 소거해가고 있다. 이 이후, 인간종과 아려는 불가침의 교우가 되어 아리스토텔레스를 공통의 적으로서 배제할 때까지 스스로를 인류라고 구별한다.

 

l 여섯 자매 [No.1 Saving System the Earth]

  대전을 통해, 아려백종의 맹주로서 군림하게 된 존재.

  그 외견의 인간종과 같지만, 모두 검은 모자를 쓰고, 빗자루를 탄 동화 속의 마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각자가 아려백종 전부를 능가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대전 말기, 막내인 '심판'은 기사에 의해 쓰러졌지만, 그 단말마로 인해 대륙에는 단층이 만들어졌다. 남은 다섯의 행방은 불명.

 

l 칠흑의 거인 [type:jupiter]

  대륙 서쪽에 출현한 검은 아리스토텔레스.

  전장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검정 일색의 거인. 그 형상은 인간에 극히 가까웠다. 정체는 검은색 광자 가스의 집합체로 이론 상 그 크기는 무한대까지 팽창한다. 가스중심에는 의사태양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핵이 있어서, 그 신체인 광자 가스는 그 핵에서 방출되는 것 같다. 여덟 마리의 아리스토텔레스 중, 특히 생명을 많이 소거해온 존재. 서쪽 대륙에서 총전력으로 싸움을 걸었지만, 이것을 상처 없이 격퇴했다. 게다가 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겐 상처라는 개념조차 없다. 그 후, 서쪽 대륙으로 파견된 기사단과 전투 끝에, 기사 에뎀의 마검 참격황제에 의해 양단된다. 절단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의사태양은 폭주해서 서쪽 대륙의 지표를 전부 태워버렸다.

 

 

4/ Reflect mind

 

  꿈속에서도 천사는 여전히 아름답다.

  천사의 눈동자는 유리처럼 맑고 투명해, 총을 겨눈 내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다.

  처연한 미소를 머금은 모습. 하지만, 이미 손가락은 트리거를 당겨버리고 말았다.

  꿈은 반복된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은 반복된다. 인간은 반성을 거듭해도 변하지 않는다. 잠이 깨고 나면 독선 속에서 과오를 되풀이할 따름이다.

 

  탄피가 튀어 오르는 순간에 아차 싶었다.

  눈앞에 선 천사는 고딕-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그것은 세계수에서 떨어지는 천사가 아닌 아려백종 중 20위에 속하는 인공 천사라는 걸 의미했다. 당연히 그 천사는 탄환을 퉁겨냈다. 손에 드는 알량한 화기로는 건드릴 수조차 없는 존재가 저 천사인 것이다. 

  하늘에서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어두운 골목길에서 움츠린 듯한 날개는 유체금속처럼 무거운 광택을 머금고 있다. 일체의 동요 없이 이쪽을 바라보던 천사가 검지를 들어 총처럼 겨누었다. 나도 반사적으로 총을 들어올렸지만, 무의미한 짓이다. 이런 사이드 암으로는 전탄을 퍼부어도 상처하나 입힐 수 없을 터, 반면 천사는 날개로 '진'을 살짝 만 공진시켜도 이쪽을 순살(瞬殺)시킬 수 있다. 트리거에 건 손가락이 가늘게 경련한다.

「Bang!」

  천사는 겨누던 손가락을 한 번 가볍게 까닥거리며 웃었다. 전신의 맥이 탁하고 풀려버렸고, 다음 말을 듣자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시간 좀 있나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천사와 반년 가까이 마시러 다녔다. 그리고 많이 익숙해졌다고 느낄 무렵 천사가 물었다.

「어째서 천사 사냥 따윌 하지?」

-그건 삐뚤어져 있으니까.

「-일이니까, 어쩔 수 없어.」

  천사는 후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뭣하면, 내가 먹여 살려 줄 수도 있는데.」

「그만 둬, 애완동물 취급할 생각이야? 네 방식대로 사는 건 자유지만, 그걸 남에게 강요하지는 마.」

  이럴 때는 화내야 될 것 같은데, 쉽지가 않다. 천사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당신 생각하는 게 그대로 표정으로 나오는 거 알아. 숨기려고 하니까 더 잘 느껴져.」

「누가 바보인줄 알아?」

  천사는 계속 웃으며 글라스를 기울였다.

「그래서 끌리는 거니까 말야... 천사 사냥 따윈 그만두고, 나랑 아이를 만들자.」

-응?

  아려백종의 도도한 천사가, 나같이 무력한 인간종에게? 그들에 대해 약간이라도 견식이 있는 자한테는 너무 황당한 이야기. 이런 식으로 놀림 받는 거라면 사양이다.

「너무 마셨어, 너.」

  자리를 일어서려고 하는데 천사가 손을 잡아 저지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침울한 시선을 던졌다.

「왜 그런 표정으로 천사를 바라보지?」

「그런 표정이라니, 어떻게?」

  나는 실소했다. 천사도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어이가 없는지 같이 웃음을 흘렸다.

  천사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술집을 나섰다.

  웃으며 헤어졌는데도, 반년이나 보지 않은 것은 왜 일까? 그 이후로 줄곧 멀리해 오다가 결국 다시 만나게 되고 말았다. 여전히 부담스러운 것은 아마도 그녀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속이 울렁거리고, 바짝 마른 머리 속에선 누군가가 북을 치는 것 같다. 오랜만에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신 탓에 숙취가 심하다. 목이 타는 듯한데, 손에 차가운 물 컵이 잡혔다. 나는 정신 없이 들이키다가, 분수처럼 입으로 뿜어내고 말았다.

「뭐야, 이건?!」

나오는 대로 소리를 질렀더니, 머리 속이 깨질 것처럼 쩡하고 울렸다.

「설탕물이 숙취에 좋다고 해서.」

  천사는 눈을 동그랗게 눈을 뜨며 입을 가린 채로 대답했다.

물에 젖은 설탕과 설탕물 정도는 구분해야지... 물보다 설탕이 많은 걸 마시라고 내밀다니. 단당류 농축 분말을 머금었던 입 속은 금새 얼얼해졌다. 공장에서 나온 소재는 묽게 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몸이다. 하루에 자기 체중에 절반 이상 먹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너와는 다르다고.

천사는 나를 돕는다고 이리저리 부산을 떨었다.

  이 녀석 나를 죽일 생각인가?, 비몽사몽간에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눈을 뜰 때보다 서너 배쯤 상황이 악화되고 나서야, 겨우 약을 먹을 수가 있었다.

  대충 몸을 추스르고 일을 나가려고 하는데 천사가 손을 잡아 멈추었다.

「괜찮아요?」

  천사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속이 메슥거리고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말 할 수 없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가녀린 어깨를 비틀어 벽으로 밀어붙였다.

「왜 나한테 간섭하는 거지?」

「미안해요, 전 당신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천사는 아픔에 겨워하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하! 내가 널 살해했기 때문에 여기 나타났다고 했지? 여기서 다시 한번 죽이면 어떻게 될까?」

  천사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용없어요. 당신이 이대로라면.」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말없이 방을 나섰다. 천사의 정체가 무엇일까 궁금했지만, 깊게 생각한 적은 없다.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기 때문이다.

 

   감색(紺色)의 나무들 사이를 걸어간다, 하늘을 보자 날개를 펄럭이며 천사가 내린다. 가늠자에 올라선 천사는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춤추며 떨어진다. 이 순간 나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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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소재(素材) [nutrient material]

  공장에서 생산되는 음식물의 총칭.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강철의 대지에서 식료와 동일어.

  이 세계의 먹거리는 전부 공장[plant]에서 생산된다. 그리고 그걸 소비하는 계층은 이 별의 환경에 적응한 아려백종이나 인간종으로, 과거의 인류에 비해 기초대사율이 현저하게 높아져 있다.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많은 영양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소재는 과거의 식료들과 외견상으로는 비슷하지만, 농축된 영양물질이 흡수되기 좋은 상태로 조성되어있다.  때문에 인간[Last-seed]이 그대로 섭취[ingest]하면 그 화학변화를 못 이겨 몸을 상하게 되고,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

 

 


5/ Mnemonic filter

 

 

  조준이 빗나가고 말았다. 상처 입은 천사는 기성(奇聲)을 내지르며 달려든다.

  한 번에 급소를 맞추지 못한 게 오늘만 벌써 3번째다.

  뒤로 천천히 물러서며 방아쇠를 연속으로 당긴다. 한 발, 두 발... 총성에 맞춰 허우적거리던 천사는 넝마가 되면서도 내 발치 깨에 와서야 겨우 급소를 맞고 쓰러졌다. 퍼드덕거리는 날개에 맞아 쓰고 있던 고글에 상처가 났다.

  고글을 고쳐 쓰기 위해 고개를 들어 보니 세계수의 끝가지가 천천히 흔들리고 있다.

  가을이 되면 천사 처리계는 바빠진다. 낙엽이 지는 만큼 천사도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피곤한 탓인지 실수하는 일이 잦아졌다. 오늘은 완전히 적자다. 탄을 이렇게 쏴대면 탄값이 천사를 잡아서 나오는 돈보다 많이 들어간다. 급소에 맞춰 한 방으로 보내야 일석이조로 탄 값 지출이 줄고, 천사도 고통을 덜게 된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반사적으로 총구를 겨눴다.

  천천히 걸어 나오는 실루엣은 은빛 날개를 달고 있었다. 천사의 것과는 다른 앤티크한 장신구 같은 날개를 코스튬한 모습. 인간종이면서 저런 위익(爲翼)을 달고 날 수 있는 종은 기사뿐이다.

  하지만 한 번 들어올린 총구는 쉽사리 내려가지 않는다. 기사는 바이저를 쓰고 있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역시 당신이군요.」

「난 당신을 모르겠는데.」

  생각할 것도 없이, 기사와 친하게 지낸 적 따윈 없다.

「그 때, 당신은 혼수상태 였고, 전 기사의 종자(種子)에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확실히 당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 알았어. 알았으니까, 할 말 다했으면 어서 가버려.」

  남은 손을 휘휘 저어 쫓는 시늉을 했다. 마검으로 대지를 가르는 기사 앞에서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걸 다른 이들이 보면 미친 녀석 취급하겠지.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한다.

「십자가가 이쪽으로 향할 것 같습니다.」

  순간적으로 움찔해서 방아쇠를 당길 뻔했다. 십자가라면 아리스토텔레스 중에서 공중요새라 일컬어지는 존재다. 일정 루트로 비행하기 때문에 피해서 도망갈 수는 있지만, 맞서 싸운 존재는 살아남지 못했다고 들은 적이 있다.

「맨몸으로 '진'만 들이켜도 죽는 나 같은 인간종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지?」

「기사단은 세계수가 있는 이 퍼블릭 가든을 어떻게든 지켜낼 것입니다. 당신이 제가 살던 그 거리를 지켰던 것처럼 말이죠.」

「착각이야.」

  지켜야 할 것도, 지키려고 했던 적도 없다. 영웅 흉내에 실패한 나는 단지 계속 살아남기 위해 싸워왔을 뿐인걸.

「그래도, 검은 총을 쥐고 있던 당신의 모습은 제겐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기사는 그 말을 뒤로 한 채, 위익을 빛내며 거리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가 사라진 빈자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나서야 겨우 총을 내릴 수가 있었다.

 

   잔뜩 먹고 나서 기분이 좋아진 천사는 습관처럼 창 밖을 내려다보며 기타를 친다. 밝고 활기 찬 성격과는 대조적인 나긋나긋하고 슬픈 듯한 곡이다. 나도 잘 알고 있는 오래된 스탠더드 넘버.

  예전에 누이가 자주 치던 것이기도 하다.

  깊이 감추어두었던 검은 총을 꺼내보았다.

 

   몸이 약한 누나는 견착대를 걸지 않으면 총을 겨누는 일조차 힘겨워 했었다. 하지만 까만 머리를 붉은 밴드로 질끈 묶고, 표적을 겨누면 결코 빗나가 적이 없던 그녀. 내게 사격을 가르친 것도 누나였다.

   칠흑의 거인이 살해당하며 남긴 업화(業火)로 부모를 잃은 우리 남매는 대단층에 가까운 부락으로 흘러 들어갔다. 보호자 없는 어린 인간종이 살아가기에 이 강철의 대지는 너무나 거친 곳이었다.

   누나는 늘 침대에 기댄 채로 창 밖을 올려다보며 기타를 친다. 하늘에는 대단층을 자유로이 가로지르는 비행종의 모습이 보인다.

   '날개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라며 누나는 퀭한 눈으로 서글픈 듯이 독백했다.

   난 희귀 인간종 보호정책이 있는 에어리어로 누나를 데려가기 위해 닥치는 대로 뛰어다녔다.

   어느 날,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누나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몸이 약한 누나에게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일이다.

    미친 듯이 그녀를 찾아 헤맸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봉인구역이라 불리는 구시대의 유적까지 들어갔다. 그곳에서 누나는 피를 토하며 죽어가고 있었다.

    "저기야, 저 안에 그것이 기다리고 있어. 네가 그걸… 그러면, 너는…."

   바깥바람을 쐬어 창백해진 얼굴로 누나는 웃고있었다. 하지만 그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희미하다.

   그렇게 누나를 잃어버린 그곳에서 '블랙 배럴'과 만났다.

이 검은 총은 본능대로 살았던 인간종의 유산이자, 희망없이 절망을 헤쳐나가려고 했던 누이의 유품이다.

   기타소리가 멈췄다. 천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뭐해요?」

「총을 닦고 있어.」

  자연스럽게 케이스를 닫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왜 눈이 빨게요? 울 것처럼.」

  천사는 현을 퉁기며 이쪽을 살폈다.

「고글이 깨져서 '진'이 눈에 조금 들어갔나 보지.」

「흠...」

   천사는 현을 퉁기며 튜닝을 한다. 말없이 침대에 몸을 던지고 눈을 감자, 잠시 후 다시 연주가 시작되었다. 익숙한 선율은 쉽게 마음을 잠식해온다.

 

   기억 너머로 어린 꼬마가 검은 총을 품에 안고 외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밉고,

  기사도 밉고,

  아려백종도 밉고,

  전부 밉다고, 누나마저 빼앗아간 세상 전부가 싫다고 쉬어버린 목으로 울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유치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네?,하며 천사는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달리 칠 줄 아는 곡은 없어?」

  있어요, 하고 어깨를 으쓱하며 기타의 현을 탔다. 하지만 역시 내게는 익숙한 레퍼토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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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십자가(十字架) [type:saturn]

  전장 3천 미터에 달하는 십자가 같은 아리스토텔레스.

  그 외피는 발광하는 광물로 형성되었으며, 문양 같은 것은 일체 없다. 십자가를 닮은 이 비행물체는 지상으로 향하는 빛의 비를 내린다. 이 비는 1미터 정도의 십자형 전자충격으로, 그대로 지면을 뚫고 들어가 지진을 유발, 생명이 사는 대지 그 자체를 파괴한다. 땅을 꿰뚫는 무수한 십자가는 황무지에 펼쳐진 묘표 그 자체일 것이다. 공중요새라고도 불리며 이 행성권 내에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들의 리더 격인 듯 하다.

 

l 블랙 배럴 [Black Barrel "the Longinus"]

  총신(銃神)이 소유한 검은 총.

  완전히 '진'에 상극되는 광물로 만들어져서, 진을 미량이라도 가진 생명체에 있어선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병기. 신마저 죽이는 총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세계에 존재하는 온갖 생명종은 '진'의 영향을 받은 탓에 이것의 사용은커녕 만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공격대상이 되는 생명종이 강대한 힘 - 즉, '진'을 많이 포함하면 할수록 그 살상능력은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지금은 희소종이 된 - '진'을 포함하지 않아 환경에 대응하지 못했던 생명종만이 아무런 영향 없이 이 총을 만질 수가 있다.

 


6/ After Images

 

  시끌벅적한 거리의 인파를 헤치며,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천사는 아직 질리지도 않고 여기에 있다.

  계절은 곧 겨울. 기온은 빙점의 임계를 돌파해, 거리는 금새 말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렇지만, 두 번째 겨울을 이 거리에서 맞이할 생각은 없어지고 있었다.

「최근, 거리가 소란스럽네요.」

  창에서 거리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천사가 중얼거린다.

  커다란, 소녀보다 커다란 창은 그림책에서 본 교회의 스테인드 글래스 같았다.

  금빛 머리칼과 새하얀 날개를 가진 천사는 고개를 숙이며 슬픈 얼굴을 했다. 그 등뒤로 창에 비친 거리와 두 그루의 세계수는 신기루처럼 재를 피워 올리고 있다.

  거리는 지금 도망가려는 사람들로 혼잡하다.

「저, 모두들 뭣하고 있는 거죠?」

「저건 거리를 일제히 떠나는 거야. 하늘을 나는 전장 3천 미터 짜리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웃한 에어리어가 궤멸 당했어. 녀석의 진행루트를 계산하니 앞으로 3일 정도만 있으면 이 거리를 통과한다는군.」

「제 위로요?」

「우리들의 머리 위다. 세계수도 파괴될지 몰라. 어느 쪽이든 녀석이 통과한 아래로는 멸절되어 버린다. 거리의 주민들이 도망가는 건 당연해.」

「아, 그래서 모두 저렇게 필사적이군요.」

  멍하니 지상을 내려다보며 천사는 읊조렸다.

  나는 얼빠진 듯 계속 서있는 천사를 흘끗 보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그 옆 모습이 기억 속의 누군가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에 매달릴 마음은 없다. 겨울에 대비한 방한복과 방한구, 개인용 에어메이커, 그리고 몇 자루의 총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검은 총은 제외다. 도망가는 자에는 그것은 너무 무겁고, 거추장스러울 테니까.

「당신도 가버리는 건가요?」

「죽고 싶지 않으니까. 단지 지금 당장은 가지 않아. 밑의 소란이 가라앉을 즈음에 혼자서 나갈 거야.」

  천사는 유감스러운 듯이 눈을 내리깔았다. 언제나 무의미하게 밝을 뿐인, 그 뿐인 천사는 지독하게 외로워 보였다.

「마지막이니까 물어보지, 넌 대체 뭐지?」

  천사는 하~아 하고 긴장감 없이 답했다.

  이 녀석이 실재하는 천사가 아니란 것 밖에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정체 정도는 알아두고 싶었던 것이다. 천사는 간단히 대답했다.

「전, 모두가 아리스토텔레스라고 부르는 존재입니다만…….」

  몰랐어요? 라는 눈으로 천사는 이쪽을 살폈다.

 

  아리스토텔레스. 돌연 이 별에 나타나, 예외 없이 모든 생명체의 적이 된 '것'. 의사 소통의 방법은 물론, 그 생명체로서의 생태조차 확인되지 않은 계측 불능의 괴물들.

  그것이 이런 조그만 거리의,

  구질구질한 타워의 싸구려 아파트 방에,

  천사의 모습을 하고 기타를 치고 있다니, 웃을 얘기가 아니다.

  이런 생물에게 지구상의 온갖 생명종이 배제되었다니, 신은 무슨 천벌을 준비한 거란 말인가?

「정말로, 네가?」

「아이~, 정확히는 이 거리의 지반인걸요. 나였던 '것'은 사살 당해 여기로 떨어졌어요. 즉사 였죠. 그 후로 몸 위에 나무들이 싹을 틔우고, 사람들이 살게 된 거랍니다.」

   천사는 이야기했다. 이 별에는 더 이상 생명을 키울 힘이 없어서, 그래서 녹색은 피어나지 않지만, 토대가 되는 대지가 별이 아닌 하나의 생명체라면 싹이 돋아난다고.

「본래, 나는 그런 '것'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세계수라고 부르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나였던 '것'의 날개예요. 제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거리로 떨어져 내리는 나였던 '것'의 모습을 한 천사는 나였던 '것'이 뿌리려고 했던 포자입니다. 원래부터 나였던 '것'은 그런 침략형의 생태입니다. 이 별에 퍼져있는 천사가 아니에요.」

「그래도 넌 천사의 모습을 하고있어.」

「나는 모두의 환상인걸요. '나였던 것'의 몸은 죽었지만. 의지 같은 '것'은 살아있던 것 같아요. 단지 나였던 '것'에게는 의지라는 개념은 없었습니다. 이 별의 종은 지성을 형상화하는데 너무나 뛰어난 기능을 가지고 있어요. 나였던 '것'이 가지고는 있었지만, 쓰지 않았던 지성은 모두를 견본으로 형상화했습니다. 제가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나였던 '것'의 원래 형태에 가까웠던 이미지가 천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돼서 저는 본래대로라면 절대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모든 분들과 같은 사고회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저는 천사라는 환상이 되는 것으로 '자신'이 된 겁니다.」

  환상이 되는 것으로 천사는 아리스토텔레스라는 것으로부터 이탈했다.

  자신이 아니게 되는 것으로, 처음 자신이란 것을 인식할 수 있었던 이상한 생명.

…가진 것 없이, 그 누구도 아닌, 사람들이 멋대로 그려낸 천사라는 이미지가 구현된 존재.

「행복한 거냐, 너는?」

  천사는 예, 하고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어디에도 없이,

  단지 환상만이 거기에 있다.

「그런가? 환상 속에서 밖에 천사는 존재하지 않는 거로군.」

  확 하고 천사의 정의를 떠올랐다.

  그것은 날개가 있고,

  고리가 있고,

  아름답고,

  그리고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결국 구원을 가져다 준다는 존재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자, 천사는 그렇습니다, 라고 유감스러운 듯이 대답했다.

 

「제가 진짜 천사라면 좋았을 텐데.」

  진짜 천사보다 훨씬 천사 같은 모습으로 언젠가 그런 말을 읊조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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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하늘의 유해(天の亡骸) [type:venus]

  전장 천 미터로 추정되는 아리스토텔레스.

  대전 이후 출현해 운해 안을 비행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자가 없어서, 형태는 일정하지 않다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두 장의 날개 같은 것을 가진 생명체로, 다른 아리스토텔레스에 비해 이 별의 생명 계통수에 가깝다. 기록에서는 신력(NC) 83년에 기사단에 의한 괴멸작전에 의해 격추, 대륙 어딘 가로 떨어졌다고 한다. 본래는 이 행성의 땅에 낙하해 대지에 뿌리를 박고, 자신의 분신이 되는 포자를 뿌려 행성 위를 먹어치우는 생명종. 거대한 동식식물(動食植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블랙 배럴에 의해 잠든다.

 

 


7/ How A Star is Born

 

햇빛에 회색으로 물든 운해 안에서, 하늘을 날던 거대한 십자가는 빛나던 육체를 허공에 흩뿌리며 소멸해간다. 회생불능의 타격을 입고서야 겨우 궤도를 벗어난 그것은 심판의 비를 지상에 뿌리며 시계로부터 사라져갔다.

 

-싸움은 끝난 듯 하다.

 

  예전처럼 나를 태운 비행기는 대류권을 넘어 한층 더 상승해 간다.

  그때와 다른 점은 서서히 올라가는 기체의 옆면에 커다란 구멍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상처 입은 이 강철의 새는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단지 날개가 있는 모든 것들의 꿈처럼 바스러질 때까지 계속 비행한다.

  곧 회색의 운해를 뚫고 성층권까지 도착하겠지. 거기서 호흡이 가능할 정도로 내 몸은 강하게 되 있지 않다. 하지만 그걸 걱정할 필요도 없다. 거기에 도착할 때까지, 부상당한 몸이 살아 있을 거란 보증은 없기 때문이다.

  들어올렸던 저격총을 내리고 벽에 기대며 쓰러졌다.

 

  해치의 열린 문으로 언젠가처럼 차가운 대기가 흘러 들어오고, 지상의 경치가 잘 내려다보인다.

  색이 없는 무채의 대지. 저 멀리 바다조차 색깔이 없다.

  그것은 완벽할 정도로 죽어버린 세계.

  그런데도 강철 빛의 세계는 그렇게나 눈부시게 시야에 넘쳐 들었다.

 

…….

 

  오 년 전에도 이런 풍경을 보았다.

  그 날 구름을 가르며 나타난 것은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두 장의 날개에 어디라고 할 것도 없이 인간에 가까운 형상, 천사를 닮은 그것을 쏘았다. 그리고 콩알 보다 작은 탄환이 이마에 박힌 천사는 추락했다.

  그 때, 트리거를 당긴 순간.

  스코프 너머에 '그것'의 눈이 있었다.

  커뮤니케이션 따윈 없었다. 단지 그것만이 사실.

  그런데도 그것이 영겁의 운해로 떨어져 가는 광경을 계속 꿈에서 보아왔다.

  기체에 동승하고 있던 천사가 눈을 떴다. 한 쌍이었던 날개의 한쪽만이 가련하게 흔들리고 있다.

  아려의 고위종인 그녀는 당연히 이번 작전에 참가해 출진했고, 만신창이가 되어서 여기로 날아들었다.

  잠시 날개를 쉬기 위해서 였을 뿐이었던 것 같지만, 운이 없었다. 그녀가 해치의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저격을 위해 십자가에 너무 붙어버린 이 비행기는 빛의 화살에 직격을 받고 말았다. 빛은 그녀의 날개와 기체를 꿰뚫고, 기체의 전자두뇌와 그녀의 의식마저 빼앗았다.

 

  그로부터 몇 분 후 지금. 혼수 상태였던 천사는 서서히 눈을 떴다.

  잘 잤어? 라고 말하자 그녀는 바깥의 경치를 둘러보았다.

  아득한 저편으로 아리스토텔레스라 불리는 십자가의 모습이 부서져간다.

  멍해있는 천사에게 이쪽의 괴멸과 작전의 성공을 고했다. 기뻐하며 천사는 다가왔다. 일어서지 못하고 기어오던 그녀의 손이 철벅하는 소리를 내며 미끄러졌다.

   바닥에 퍼질러진 내 피는 물방울 지며 천사의 몸을 붉게 물들인다.

「나를 밀어내고, 대신에?」

  천사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다만 바깥의 경치를 응시했다. 끊이지 않던 운해를 넘어 비행기는 상승해간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하늘은 책에서 본 사실과 달랐다.

「하늘이 붉어.」

  어디선가 들었던 말을 되뇌는 동안,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검은 총[Longinus]. 역시 당신이 그 '새'를 조락시킨 사람이었구나.」

「글쎄, 세간에는 그런 걸로 되어있지. 단지 그 때 운을 다 써버렸나 봐. 덕분에 지금은 이런 꼴이야.」

「바보네, 나를 감싸주다니.」

「어쩔 수 없잖아. 눈앞에서 미인이 죽어버리면 꿈자리가 사나워.」

  지독하게 연극 같은 대사를 입에 올려버리고 말았다. 너무 꼴사납고 이상해서 웃음이 나왔다.

  어울리지 않아, 라며 그녀도 웃었다. 서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지도 않고 우리들은 웃었다.

  작고, 연약하고, 상냥한 목소리였다.

「당신 바뀌었어. 전에는 이렇게 솔직하지 않았지. 나 외에 다른 좋은 사람이 있다는 소문 정말이었나?」

   그런 게 정말 있었을까? 가짜인 채라도 좋다고 말하던 천사라면 확실히 지금도 방에서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겠지.

 

   천사는 몸이 아닌 마음을 치유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아냐. 다른 누구 때문에 자신이 변하는 일은 없어. 나는 말야, 처음부터 이런 성격이었어. 차가운 척 하긴 했지만, 본성은 착한 사람이란 말야. 눈치 채지 못했었나?」

「어라, 그런 거였어?」

「그래, 그런 거였어. 어린 시절부터 영웅이 되는 걸 동경했지. 미숙한 상태였고, 지금도 그런 채야……. 그러니까 이제 가. 지금이라면 아직 한쪽 날개라도 지상으로 내려갈 수 있겠지? 나를 따라올 필요는 없어.」

  그녀는 일어서서 이상하게 엄숙한 눈길을 보냈다.

「괜찮아, 마지막까지 혼자인데도?」

「말했지? 폼 내고 싶다고. 영웅을 동경하고 있다니까. 그리고 최후는 혼자이고 싶어. 지금까지 계속 혼자였으니까.」

  익숙하지 않은 거짓웃음은 유감스러울 정도로 잘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생애 최고의 연기였을 거다.

「그럼, 안녕.」

  한 쪽 뿐인 날개를 펄럭이며 그녀는 날아갔다.

  그 모습은 붉은 바다를 헤엄치는 아름다운 물고기 같았다.

 

  일어나서 조종석으로 갔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신도 알지 못한 채 부서진 자동조종장치를 손봤다.

  운이 아직 남아 있다면, 어쩌면 다른 결말이 될 터.

  눈꺼풀을 닫고 잠들자 귓가에 목소리가 울렸다.

「당신은 왜 싸우지」

「그건, 죽고 싶지 않으니까.」

「어째서 죽고 싶지 않은 거야?」

「그야 살고 싶으니까.」

「그럼 왜 살아있고 싶은 거지?」

  간단해. 그건...

  기억의 끝에서 그 답만은 이전과 틀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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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하늘이 붉어." [blood sky]

  이 세계의 하늘. 회색의 운해를 넘어선 위에는, 푸른 하늘이 아닌 붉은 하늘이 펼쳐져 있다. 대기오염 탓이 아닌, 대전 말기에 날아든 아리스토텔레스 중의 하나였던 타입 플루토의 피 때문이다. 플루토는 맞서 싸웠던 여섯 자매와 서로 상잔했고, 그 혈액은 이 혹성을 덮어버렸다. 하늘을 감싼 회색구름은 여섯 자매가 펼친 방어막이라 생각된다. 이 붉은 하늘 안에는 침입을 저지 당한 남은 두 마리의 아리스토텔레스가 바다를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부유해 있다고 한다.

 


8/ Glitter LUV

 

  거리를 떠나기로 한 날. 한 발 늦어서 군부의 사자에게 걸려버렸다.

    오 년이나 된 옛날 이야기를 기억하던 누군가가 이번 작전에 나를 등록시킨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내버려두었던 검은 총을 가지러 방으로 돌아오니 천사는 아직 방에 남아있었다.

  기타를 품에 안은 채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짓는다.

「저것과 싸울 건가요?」

「그럴 거 같아. 기사 녀석들도 모여있는데다가, 군부도 기세등등이야. 가능한 한 십자가의 비행루트를 바꾼다는 계획이지. 그거라면 가능성이 제로인 것도 아니고.」

「무리예요. 모두들 아리스토텔레스란 것이 무엇인지 몰라요. 저것은 이 별의 생물이 아닙니다. 승산 따윈 없어요.」

「없는 건 아니지. 현재 우리들은 세 마리의 아리스토텔레스를 쓰러뜨렸어. 녀석들을 상회하는 전력이 있으면 이기지 못할 상대는 아냐.」

「그럴까요? 저것들은 이 별의 상식과는 달라요. 그래서 죽는다는 개념조차 없죠. 목적을 이룰 때까지 활동을 멈추지 않을 거예요.」

「목적? 너희들에게 그런 게 있었어?」

「예, 우리들 자신의 것은 아니지만, 있어요. 그들은 별의 소망을 이루어주기 위해 날아왔습니다. 이 별은 자신에게 서식하는 생명에 의해 죽어버렸습니다. 별 자체는 자신의 죽음을 비관하지 않았어요. 행성 위에 발생한 생명종에 있어선 사라져 가는 것은 '좋은 일'일 수도 있죠. 별에 있는 것은 의지뿐이지, 의미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예외가 생겨버렸습니다. 별은 자신을 멸망시킨 종도 운명을 같이하는 것으로서 용서합니다. 그런데 인간종은 죽음에 이른 대지에서 다시 존속해나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죽음 속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것에 겁에 질린 이 별은 마지막으로 도움을 청했어요. 부디 지금 존재하는 생명종을 없애달라고.」

「그래? 그것이 너희들인가?」

  중얼거리는 말에 천사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별의 도움을 듣게 된 건 역시 동종(同種)인 별뿐입니다. 제, 아니 저희들은 이 별의 의지를 듣게 된 다른 천체로부터 선발된, 그 별에 있어서의 최고종입니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하늘의 유해라고 불렸던 아리스토텔레스, 저였던 '것'은 금성에서 가장 우수한 개체였습니다.」

「뭐, 라고...?」

  모르는 새 숨을 들이켰다. 우리들의 적은 타천체(他天體)라는 다른 세계의 계통수 정점에 선 단 하나의 생명종인 건가? 그 천체에서 최고의 생명은 바꿔 말하면 그 천체 자체이기도 하다. 이 별에서 살아남은 인간종은 결국 여덟 개의 행성 그 자체를 상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 그렇다면 승산 따윈 없겠군.」

예라고 변명하듯이 천사는 끄덕였다.

「게다가 올바른 건 그 쪽이다. 제길, 2천년 째의 예언을 받아들였다면 인간은 피해자인 채로 끝났을 텐데.」

「아니오...! 나쁜 건 아리스토텔레스 쪽입니다. 그들에게 의지가 없어요. 의지가 없는 것이 생명을 파괴한다니, 있어선 안 되는 일이잖아요?」

  이 별의 상식을 배운 천사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 별에도 더 이상 선악의 관념 따윈 없다. 이율배반의 규칙은 단지 사느냐 죽느냐 라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나는 죽음 쪽으로 돌아설 수 없다.

「다르지 않아. 나에게도 싸움의 의미 따윈 없었어. 아마 앞으로도 없을 거야. 의미 없이 서로 죽인다는 면에서 우리들은 녀석들과 동등하다. 이게 생명의 가장 심플한 존재방식이지.」

   천사는 대답하지 않는다.

「너는 어쩔 거야? 같은 목적이라고 해도, 저 십자가와 너는 다른 존재겠지? 그럼 이 거리와 같이 네 몸도 파괴 당해. 즉사했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우리들이 말하는 식이다. 다른 천체의 생명종에게 이 별에서 말하는 죽음이 해당되리라 곤 생각하지 않아. 너 사실은 벌써 움직일 수 있는 거지.」

  천사는 끄덕인 후,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안돼요. 제가 움직이면 날개의 외피가 깨져서 흩어져버려요. 세계수의 잎이라 불리는 나였던 '것'의 포자가 전부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셀 수 없을 정도의 천사가 강림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오기 전에 모두 죽어버리고 말 거예요.」

  천사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확실히 운해까지 뻗어있는 두 그루의 나뭇잎 수는 존재하고 있는 인간종의 총수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풀려나 버린 몇 억이라는 천사는 순식간에 별의 표면을 덮어버리고 말겠지.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너는 죽게 된다.」

「괜찮아요. 저는 모든 분들에 의해 태어나게 된 환상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건 단지 지식을 받아들였을 뿐이잖아. 너는 우리들과 틀려. 너에게 있어서 우리들 따윈 말야, 알아보기 쉬운 장식 같은 거야. 어서 벗어 던지고 몸을 가볍게 하는 게 좋아.」

천사는 슬프게 웃으며, 역시 고개를 가로 저었다.

「바보야, 넌.」

「그래요,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전 이곳이 맘에 들어버렸으니까.」

  눈동자에 눈물을 글썽이며 천사는 만족스러운 듯이 말했다.

  거기에 어떤 반론을 펼치겠는가.

「그런가,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군.」

  예, 라고 끄덕이며 천사는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직격해 온 시선은 말없이 '당신은?' 이라고 물어온다.

「저는 이제 좀 있으면 죽어요. 칭찬으로 그 정도는 가르쳐줘도 벌받을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별에 온 '벌' 그 자체가 무책임하게도 그렇게 핀잔을 주었다.

  나는 짐을 등뒤에 매며 답했다.

「그래, 알았어. 자백하지. 나는 이 거리를 사랑하고 있어. 아마 그때부터 - 나는 너에게 홀려버린 것 같아.」

  네? 라고 천사는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저, 그러니까... 그건 무슨 뜻이죠?」

「그때부터 쭉 너에게 마음을 두고 있던 거야. 나도 지금에서야 알았다.」

자포자기가 되어서 말하자, 천사는 얼굴을 빛내며, 바로 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전 인간이 아닌걸요.」

  그걸, 천사는 지금이 되어서야 의식했다.

  진짜, 바보 아냐, 정말?

「있잖아, 이 세계에 인간은 나 혼자 밖에 없어, 그런 건 아무런 문제가 안 돼.」

「아, 정말 그러네요.」

  천사는 감동한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이상 할 말은 없다.

  블랙 배럴을 꺼내 들었다. 아릿한 느낌이 전신을 관통한다. 그 속에 담긴 여러 가지 무게를 끌어안자,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군에서 소집이 걸릴 시간이 가까워져 나는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럼, 다음엔 나보다 훨씬 좋은 꿈을 가진 녀석이 있는 곳으로 가. 그러면 분명 너는 진짜 천사가 될 거야.」

  내가 품고있던 환상은 어딘가 심하게 뒤틀려 있었으니까.

  마지막으로 돌아서며 말하자 천사는 애틋한 얼굴로 아니오, 라고 대답했다.

「진짜 천사 같은 건 없어요. 나는 가짜인 채로도 좋은 걸요.」

  환상은 환상인 채로 있겠다고 말했다.

  그런 건가, 라고 납득한 나는 방을 뒤로했다.

  방에는 누나의 기타와 가짜천사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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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총신(銃神) [God Gun]

  그의 별명. 타입 비너스를 죽인 '새의 조락'에 의해 붙여진 속칭. 야유를 담아 "사이비 신(似而非神)"이라고도 불린다. 얼마 남지 않은 순수한 인간. 블랙 배럴을 봉인구역에서 발굴해 사용한다. 타입 새턴과의 격전에서 사망?

 

l 아리스토텔레스 [Ultimate ONE]

  다른 천체로부터 날아온 여덟 개의 생명체

  그 정체는 각 행성 최강 생명종으로, 각기 혼자 만으로도 현 세계의 생명종을 절멸시킬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란 명칭은 사람들이 붙인 것으로 그들 본체는 이름이란 개념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끼리 싸우는 것을 제외하고는 자유로이 활동하고 있다. 그 중에는 이 별의 생명종으로부터 "의식"의 개념을 배워, 인류와 접촉한 아리스토텔레스도 나타난다. 각자의 고향 행성으로부터 칙령을 수신해 전하는 타입 새턴이 소멸한 후 인류와 최종전투에 들어간다.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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